[칼럼]좋은 제품, 나쁜 제품, 이상한 제품
옥상훈한국SW아키텍트연합 공동의장 okgosu@gmail.com 2010.02.09 / AM 09:24 |
최근 애플에서 아이패드란 태블릿 PC를 발표했다. 제품 발표에 뜨거운 관심이 쏠렸던 만큼 이상하거나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디자인적으로는 기존의 아이팟터치나 아이폰과 차이가 없다는 점, 다른 태블릿 PC와 비교해 전자책 기능외에는 차별화된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만 따지면 아이패드는 이상한 제품이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것은 애플의 히트 상품들에 대한 초기 반응은 '이상한 제품'이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1억 5천만대 이상 팔린 아이팟도 그러했다.
■ 열정적인 사용자를 위한 제품은 히트한다
아이팟이 등장한 2001년에는 아이리버, 소니, 도시바 등의 MP3플레이어가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MP3플레이어에 녹음, 라디오, 동영상, 사진 등 부가기능으로 치장하고 있었던 반면, 아이팟 초기 모델은 매킨토시에서만 호환되고, 음악재생 이외의 기능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애플은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의 욕구를 파악하고 있었고 이를 고스란히 제품에 반영하여 만든 것이 아이팟이다.
애플은 음악을 열정적으로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하는 모든 곡들을 언제 어디서 들을 수 있는 것'이란 것이라 결론 내렸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아이팟은 모든 음악을 담을 수 있는 충분한 저장 용량과 원하는 음악을 빠르게 찾아서 들을 수 있는 스크롤휠 기능등이 들어갔고, 이러한 배려는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또한 아이튠즈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 미치도록 갖고 싶은 제품
누군가가 멋지게 그 제품을 사용할 때, 이를 보는 사람의 구매욕구는 올라간다. 음악 애호가들의 맘을 사로잡은 아이팟은 그렇게 일반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심리적으로 그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그러한 무리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는 때론 미치도록 그 제품을 사고싶게 만든다.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이 그 제품을 쓰고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필자는 최근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필자는 자바를 수년간 개발했기에 안드로이드폰이 어울리겠지만 아이폰을 선택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주변의 사람들과의 '소속감' 또는 '동질감'이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경험했었다. 필자는 수년전에 나온 O사의 명품폰 구입을 고려했다가 맘을 접었다. 그 이유는 어느날 지하철에서 칠이 덕지덕지 벗겨진 그 '명품폰'을 들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어떤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 애플에게는 있고 국내 제조사에는 없는 긱(Geek)
일반 제조사는 일반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만들지만 애플은 긱의 '열정'을 승화한 제품을 만든다. 긱은 사전적으로 '괴짜'를 의미하는데, 컴퓨터, 디지털 기기나 정보통신 기술 매니아를 의미한다. 긱은 애플이란 회사가 등장하기 전에는 컴퓨터에 묻혀 사는 고리타분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애플은 이들의 잠재가치를 알았고 긱들은 애플과 함께 긱 문화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디지털 유행을 만들어낸다. 맥 시리즈 컴퓨터부터 시작해서 아이팟,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제품은 애플에 열광하는 긱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것이다. 제품에 대한 기발한 사용법부터 출시전 제품에 대한 추측 디자인, 차기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등은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 제품에 미친 회사 vs 돈에 미친 회사
제품에 미친 회사가 만든 제품은 그 세심한 배려에 사용자가 감동하지만 돈에 미친 회사가 만든 제품을 써보면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제조사가 돈에 미치면 제품은 보이지 않고 시장성만 따진다. 그래서 혁신적인 제품보다는 타사가 선출시하여 시장성을 개척한 제품의 유사품으로 승부를 건다.
한발짝 늦게 출시하기 때문에 디자인은 타사 제품과 조금 다를 뿐 제품의 보이지 않는 UX는 고려되지 않는 이상하거나 나쁜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애플의 아이패드 출시 이후에 쏟아진 모양만 유사한 여러 회사의 태블릿PC와 전자책(eBook) 단말기들, 얼마나 제품에 대한 열정이 담겨있는지는 사용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 좋은 제품, 나쁜 제품, 이상한 제품
아이패드는 좋은 제품, 나쁜 제품, 이상한 제품 중 어디에 속할까? 수년전 스티브잡스가 아이팟을 발표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 마니아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애플은 분명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행동패턴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품에 반영했을 것이다. 책을 별로 안읽는 사람들에게는 아이패드로 책보는 것 이외의 기능이 없음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이상한 제품으로 보이겠지만, 음악을 위한 아이팟이 그랬듯 책을 위한 아이패드는 책을 읽을 때 그 세심한 배려에 반하게 되는 좋은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플의 제품을 기대하게 된다.
■ 정리하며
애플은 제품을 출시할 때 마다 관련 업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일반 제조사의 신제품 발표회는 기자간담회로 끝나지만 애플은 신제품 발표회 장면이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이러한 애플의 힘은 긱과 제품에 대한 열정이다. 애플의 '긱'을 수용하는 태도와 '제품'에 대한 열정을 배우지 않으면 결코 애플을 뛰어 넘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okgosu
[필자소개]
97년 한양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자바개발자로 IT에 입문한 12년차 IT 맨으로, 자바크래프트닷넷, 자바스터디 운영자로 활동했으며 한국 자바개발자 협의회 (JCO, JavaCommunity.Org)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연합의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매크로미디어 컨설턴트를 거쳐 한국어도비시스템즈에서 RIA 아키텍트를 맡았었다. UX, RIA기술 분야에 컬럼, 세미나,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twitter.com/okgosu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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